에이전트는 완벽하게 작동했지만, 팀은 조용히 폐기해버렸다.
The agent worked perfectly. The team quietly killed it anyway.
핵심 요약
기술적 효율성만 고려하다가 업무의 정치적 가치를 간과해 에이전트가 실패한 사례를 공유합니다.
- 자동화의 함정 — 업무 효율성만 따지다 담당자의 입지를 위협함
- 인적 요소 간과 — 업무가 담당자에게 주는 권력과 가치를 무시함
- 조용한 사보타주 — 담당자가 에이전트의 오류를 지적하며 폐기를 유도함
- 사전 조사 필수 — 기술 도입 전 업무의 정치적 맥락을 파악해야 함
지난 3월에 클라이언트 하나 보고용 에이전트 만들어줬음. 뭐 대단한 건 아니고, HubSpot이랑 내부 시트 두 개에서 데이터 긁어와서 요약 체인 돌리고, 이상한 거 있으면 체크해서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Slack에 보고서 쏴주는 놈이었음.
완성도 높이는 데 2주 정도 걸림. 결과물 깔끔했고, 리뷰할 때 클라이언트 운영 팀장도 엄청 좋아했음. 수동으로 하던 것보다 정확도도 훨씬 높았거든. 다들 좋다고 사인까지 마쳤지.
근데 3주 뒤에 다른 일 때문에 사용 로그 확인하다 보니까 이놈이 9일째 안 돌아가고 있는 거임. 아무도 말 안 해줌. 에러 티켓도 없고, 불만도 없고, 그냥 조용함.
운영 팀장한테 무슨 일이냐고 물어봤더니 전형적인 회사원식 회피 답변만 돌아옴. "도입 시기 조율 중이다", "팀원들 몇 명이 질문이 좀 있다", "아마 다음 분기에 다시 검토할 것 같다" 뭐 이런 거 있잖아. 다들 알지?
진실 파악하는 데 2주 더 걸림. 알고 보니 2년 가까이 매주 그 보고서를 수동으로 만들던 여직원이 있었는데, 그게 자기 밥줄이나 다름없었던 거임. 월요일 스탠드업 미팅 때 그 수치들 들고 들어가서 VP한테 핵심 짚어주고, 자기 의견 덧붙이고, 주의 깊게 봐야 할 거 짚어주는 게 그 사람 루틴이었거든. 경영진이랑 독대하는 그 20분이 그 사람한테는 자기 존재감 드러내는 유일한 시간이었던 거지.
내가 자동화한 건 보고서가 아니라, 누군가의 '자리'였던 거임.
그 여직원이 자기 밥그릇 지키려고 한 게 틀린 것도 아님. 그 수동 작업 덕분에 이미 승진도 한 번 했거든. 그 사람 커리어에 엄청 중요한 일이었는데, 요구사항 정의 미팅에서 그런 속사정을 누가 대놓고 말하겠냐고.
결국 뻔한 결말이 났지. 그 여직원은 에이전트랑 대놓고 싸우는 대신, 에이전트가 "틀린" 부분들을 찾아내기 시작함. 사소한 서식 문제나, 수치는 맞는데 "맥락이 부족하다"는 식의 딴지였지. 수동 검토 단계를 하나 추가하고, 또 하나 더 추가하고. 결국 팀원들은 귀찮아져서 에이전트 안 쓰고 다시 예전 방식으로 돌아감. 에이전트는 그렇게 죽었고, 아무도 나한테 해지 메일 한 통 안 보냄. 나중에 인보이스 얘기할 때 분위기 싸해지면서 알게 됐지.
내가 놓친 게, 그리고 우리처럼 클라이언트용 에이전트 만드는 놈들이 다들 놓치고 있는 게 이거임. 기술적인 문제만 파고들고 정작 중요한 '사람' 문제는 건너뛴다는 거. 지금 이 일을 누가 하고 있는지, 그 일이 직무 기술서에는 안 나와 있지만 그 사람한테 어떤 의미가 있는지, 그 일이 사라지면 그 사람의 일주일이나 회사 내 입지, 영향력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말이야.
만약 솔직한 답이 "그 사람도 이 일 지긋지긋해하고 그냥 잡무일 뿐이다"라면 당장 만들어도 됨. 근데 만약 그 일이 그 사람의 지위나 권한, 혹은 높은 사람 눈에 띌 기회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면, 넌 프로세스를 자동화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입지를 깎아먹고 있는 거임. 그런 경우엔 사람들이 버그 리포트 안 올려. 그냥 네 에이전트가 죽게 내버려 두고 계약 끝나기만 기다릴 뿐이지.
요즘은 기획서 쓰기 전부터 이 질문들부터 던지는데, 덕분에 똑같은 꼴 날 뻔한 프로젝트 두 개는 미리 걸러냈음.
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