Into the Breach - 십 대를 위한 OpenAI
Into the Breach - OpenAI 4 Teens
핵심 요약
OpenAI의 십 대용 AI 제품이 인간의 복잡한 사회적 관계와 십 대의 자율성을 이해하지 못해 실패할 것이라는 비판적 견해.
- AI의 한계 — 십 대의 복잡한 사회적 맥락과 자율성을 이해하기엔 기술이 부족함.
- 부모의 역할 — 타인이 십 대의 사회적 관계를 인위적으로 설계하는 것은 불가능함.
- 상충하는 기대 — 십 대, 부모, 기업 간의 서로 다른 기대치가 AI 제품의 실패를 초래할 것임.
- 성장의 과정 — 십 대는 조언을 거부하고 스스로 선택하며 성장하는 존재임.
OpenAI가 십 대들을 겨냥해 내놓은 신제품을 보면서 든 생각인데, 이건 진짜 대실패할 게 뻔함. AI는 아직 어른들이 쓰기에도 한참 부족한 수준인데, 하물며 십 대들한테 충분할 리가 있나. 단순히 "AI가 애들을 친구들로부터 고립시키지 않게 해라" 수준의 문제가 아님.
AI는 십 대 애들을 돌보기엔 너무 눈치가 없음.
나랑 10살 넘게 차이 나는 남동생이 있어서 이 문제를 실전으로 겪어본 적이 있음. 내가 동생한테는 거의 멘토 같은 존재였거든. 운동도 같이 다니고, 밥 먹이고, 옷 입히고, 나름 좋은 길로 인도하려고 애썼지.
가끔 동생이 자기 친구들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얘기해주는데, 듣다 보면 영 마음에 안 드는 거야. 그래서 계속 더 좋은 친구들을 사귀라고 잔소리했지.
심지어 내가 직접 나서서 도와주기도 했음. 동생이 다니는 스포츠 클럽에서 친구를 사귀어보라고 부추기기도 했고.
근데 내 근시안적인 계획엔 큰 문제가 있었음.
동생 친구들은 학교에서 매일 보는 애들이고, 집도 근처였음. 이미 동생 일상의 일부였단 말이지. 언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애들이었음. 스포츠 클럽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보면 더 좋은 영향력을 줬을지 몰라도, 동생한테는 '자기 친구'가 아니었고 학교도 같이 안 다니고 집도 멀었음.
내가 딱 헬리콥터 맘 그 자체였음. 클럽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난리도 아니었지. 결국 동생이 17살쯤 됐을 때, 나한테 완전히 등을 돌리더라고. 몇 년 동안 하던 운동도 다 때려치웠음. 그냥 친구들이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었거든.
내가 동생 친구들에 대해 틀렸던 거임. 물론 걔들이 사고를 치고 다니긴 했어도, 돌이켜보면 내가 상상했던 최악의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음.
사람들은 AI가 그냥 십 대한테 "밖에 나가서 친구 사귀어라, 클럽에 가입해라, 부모님이랑 대화해라" 같은 소리나 할 거라고 생각하나 본데, 천만의 말씀임.
만약 그 십 대가 결점이 많은데도 굳이 그 친구들을 선택한 이유가, 그나마 자기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는 사람들이라서라면 어쩔 건데? 내 동생도 아는 사람은 많았지만, 자기를 웃게 해주는 건 그 친구들뿐이었음. 가끔은 걔들이 하는 짓이 불편할 때도 있었겠지. 친구들을 통제할 순 없었지만, 그게 동생이 가진 전부라고 느꼈던 거임. 결국 동생은 걔들이랑 부대끼면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갔고, 도저히 못 참겠다 싶을 땐 스스로 거리를 둘 줄도 배우게 됐음.
AI가 외로운 십 대들을 만든 게 아님.
학교에서의 압박, 가정 내 압박, 경제적 부담, 사회적 파편화, 그리고 젊은 애들이 그냥 편하게 모여서 시간 보낼 공간이 사라진 현실을 AI가 만든 게 아니라고.
게다가 AI가 "더 좋은 친구를 사귀어라"라고 말한다고 해서 건강한 사회적 환경이 뚝딱 만들어지는 것도 아님.
OpenAI의 십 대용 서비스는 앞날이 뻔함. AI가 십 대, 부모, 그리고 그걸 만든 회사 사이에 끼어버릴 테니까.
십 대는 "날 이해해주고 도와줘"라고 기대하겠지.
부모는 AI가 자기들을 대변해주길 바라면서 "내 애를 나처럼 만들어놔"라고 요구할 거고.
회사는 "모두를 만족시켜라"라고 기대하겠지.
당연히 이 기대치들은 서로 완전히 모순됨.
십 대는 거의 완벽함과 절대적인 충성심을 원할 거임.
부모 입장에서는 AI가 애들의 의존성만 키우고 '객관성'을 잃게 만든다고 불만을 터뜨릴 거고.
회사 입장에서는 AI가 만들지도 않은 문제들 때문에 비난의 화살을 다 뒤집어쓰게 될 거고, 결과적으로는 훗날 존 코너 같은 놈들만 잔뜩 양산하는 꼴이 될 거임.
아이러니한 건, 아무리 좋은 의도로 접근하는 사람이라도 이 일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거임.
나도 동생을 아꼈고, 잘되길 바랐음. 우리 동네에선 찾기 힘든 기회들을 어떻게든 쥐여주려고 노력했지. 하지만 동생의 사회생활을 내가 마음대로 설계할 수는 없었음.
근데 왜 우리는 AI가 그걸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거지?
진짜 제대로 된 십 대용 AI 친구라면 외로움과 고독의 차이, 나쁜 친구와 불완전한 친구의 차이, 회피와 거절의 차이, 사회적 피로감과 사회적 고립의 차이를 이해해야 함.

